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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전국시대의 사상가 맹가(孟軻)의 저술.사서(四書)의 하나.

맹자

관리그룹 김선형, 2011-10-15 11:32:17

조회 수
1858

1. 중국 전국시대의 사상가 맹가(孟軻)의 저술.

2. 송대의 유학자인 주자(朱子)에 의해 유학의 기본 경전인 사서(四書)의 하나.

3. 양혜왕·공손추·등문공·이루·만장·고자·진심의 7편으로 구성되었다.

4. 공자의 인(仁)에 다가 의(義)를 추가해 왕도정치의 바탕으로 삼았다.

5. 성선설(性善說)과 민의(民意)에 의한 혁명론(革命論)을 중심으로 삼고 있다.

6. 정의에 따른 사회생활을 강조하고 그 물질적 기반을 매우 중시하였다.

7. 대인과 소인의 일을 구분하여 정신 노동자의 지배를 합리화하였다.

8. 구성과 논리, 박력 있는 논변으로 <장자>와 <춘추좌씨전>과 3대 문장으로 한문학습의 필수 교재로 사용되었다

맹자 (孟子 ; BC 372 ?~BC 289 ?) 

중국 전국시대(戰國時代)의 유교 사상가로서 성명은 맹가(孟軻)이며 자는 자여(子輿) 또는 자거(子車)라고 하지만 확실하지 않다. 

지금의 산둥성[山東省] 쪼우셴현[鄒縣]에 있었던 추(趨) 출생이다. 

공자의 유교사상을 공자의 손자인 자사(子思)의 문하생에게서 배웠다. 그의 일생은 여러 면에서 공자의 일생과 닮은 점이 많았다. 

추와 노(魯:공자가 태어난 나라)는 인접한 국가였고 공자와 마찬가지로 맹자도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슬하에서 자랐다. 

맹자의 어머니는 어린 아들의 교육에 각별한 신경을 썼다. 어릴 때 현모(賢母)의 손에서 자라났으며 묘지,시장, 서당의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는 유명한 고사이다. 

제후가 유능한 인재들을 찾는 전국시대에 배출된 제자백가(諸子百家)의 한 사람으로서 맹자도 BC 320년경부터 약 15년 동안 각국을 유세하고 돌아다녔으나, 자기의 주장이 채택되지 않자 고향에 은거하였다. 

제후가 찾는 것은 부국강병(富國强兵)이나 외교적 책모(策謀)였으나, 맹자가 내세우는 것은 도덕정치인 왕도(王道)였으며, 따라서 이는 현실과 동떨어진 지나치게 이상적인 주장이라고 생각되었다. 

만년에는 제자 교육에 전념하였고, 저술도 하였다고 한다. 

《맹자》 7편은 맹자의 말을 모은 후세의 편찬물이지만, 내용은 맹자의 사상을 그대로 담은 것이다. 

주자학(朱子學) 이후로 《맹자》는 《논어》 《대학》 《중용》과 더불어 ‘사서(四書)’의 하나로서 유교의 주요한 경전이 되었다.

맹자의 사상을 알 수 있는 유일한 책이며, 또 전국시대의 양상을 전하는 흥미있는 내용으로 가득차 있다. 

문장은 변론조이며, 예부터 명문으로 여겨진다.

맹자의 사상은 인의설(仁義說)과 그 기초가 되는 성선설(性善說), 그리고 이에 입각한 왕도정치론(王道政治論)으로 나누어진다. 

공자의 인(仁)의 사상은 육친 사이에 생기는 자연스러운 친애(親愛)의 정을 널리 사회에 미치게 하려는 것이며, 이 경우, 소원한 쪽보다 친근한 쪽으로 정이 더 간다는 것은 당연시되었다. 

가족제에 입각한 차별애(差別愛)인 것이다. 

맹자는 이를 받아들여, 한편으로는 보편적인 인애(仁愛)의 덕(德)을 주장하고, 한편으로는 그 인애의 실천에 있어서 현실적 차별상(差別相)에 따라 그에 적합한 태도를 결정하는 의(義)의 덕을 주창하였다. 

‘인은 사람의 마음이요, 의는 사람의 길’로서, 의는 인의 실천에서 준거할 덕이며, 유교사상은 이로부터 도덕사상으로서의 준엄성을 가지게 되었다. 

성선설은 그러한 인심(仁心)이 누구에게나 갖추어져 있음을 강조한 설이다. 

인간의 본성으로서는 악(惡)에 이르는 욕망도 사실은 존재하지만, 맹자는 그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도덕적 요청으로서 본성이 선(善)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모든 사람의 도덕에 대한 의욕을 조장하려고 하였다. 

따라서 사람으로서의 수양은 ‘욕심을 적게’ 하여 본래의 그 선성(善性)을 길러내는 일이었다. 

맹자의 성선설을 좀더 자세하게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즉, 맹자의 철학사상은 공자의 가르침을 확충해 재해석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공자는 인간의 기본적인 덕목으로 '인'(仁)을 가르쳤고 맹자는 성선설을 사상체계의 핵심으로 삼았다.

맹자에게 자명한 진실은 사단(四端 : 4개의 마음씨, 즉 惻隱之心·羞惡之心·辭讓之心·是非之心)을 인간이 타고 났다는 점이다. 

이 사단을 잘 발달시키면 4개의 최고의 덕인 인(仁)·의(義)·예(禮)·지(智)가 된다는 것이다. 

맹자가 주창한 성선설은 수천 년 동안 중국 사상가들 사이에서 끊임없는 토론의 주제가 되어왔다. 

맹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인간이 직관적 지식과 직관적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가르쳤고 개인의 덕성함양은 자신의 마음을 수양하는 데 달려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자신의 마음을 최대한으로 수양한 사람은 자신의 성품을 안다. 자신의 성품을 안다는 것은 하늘을 아는 것과 같다." 따라서 맹자에 의하면 모든 사람이 고대의 전설적인 성군인 요·순(堯舜)과 같은 인물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맹자의 왕도정치는 그러한 인심에 입각한 정치이다. 군주는 민중에 대한 사랑을 바탕으로 정치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또 경제적으로 넉넉하게 한 다음 도덕교육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불인(不仁)한 군주는 쫓아내어야 한다는 주장도 했다. 당시의 제후가 맹자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즉, 맹자에 의하면 통치자는 2가지 측면에서 백성의 복지를 보살펴야 된다고 한다. 

즉 백성들의 생계를 보장하는 물질적인 상황을 만들어 주어야 하고 그들을 교육시키는 도덕적·교육적 지침을 마련해야 한다. 

그는 백성들의 경제적 자립을 보장해주는 구체적 계획에 대해 언급했고 이 이야기가 〈맹자〉에서 3번이나 나온다. 또한 조세경감, 자유무역, 천연자원의 보존, 노약자를 위한 복지대책 수립, 보다 공정한 부의 분배 등을 주장했다. "생계수단이 든든할 때라야 든든한 마음가짐을 가질 수 있다"(恒有産 恒有心)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맹자는 패도를 버리고 왕도를 따라 인정을 펴야 한다고 꾸준히 제후들에게 권유하는 한편, 천명(天命)을 얻음과 함께 통치자는 백성들의 복지를 돌보아야 할 책임이 있음을 특히 강조했다. 

그는 과감하게 이렇게 주장했다. "백성이 국가의 중요한 구성요소이다. 토지와 곡식의 신은 그 다음이다. 통치자는 가장 마지막에나 놓이는 구성요소이다." 또한 모든 사람이 들으라고 오경(五經) 가운데 하나인 〈서경 書經〉에 나오는 "하늘은 백성이 보는 대로 보고, 백성이 듣는 대로 듣는다"라는 구절을 인용했다. 

맹자는 이처럼 분명하게 백성의 복지를 주장했고 정부의 민주적 통치원칙인 인정을 지지했다. 유교는 맹자에 의하여 비로소 도덕학(道德學)으로서 확립되고, 정치론으로서 정비되었다. 

그 후 유교의 정통사상으로서 계승되어 유교를 ‘공맹지교(孔孟之敎)’라고 부를 정도로 중시되었다. 

<두산대백과사전>참고 

<브리태니커백과사전>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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